아빠인지 악마인지 모를 최악의 테니스 대디 5인
[디스이즈테니스] 마리아 샤라포바(36·러시아)부터 노박 조코비치(36·세르비아), 카를로스 알카라스(20·스페인)까지. 성공한 선수들 뒤에는 그들의 아버지가 있었다. 샤라포바의 아버지가 미국으로 건너가 주방 설거지를 하며 딸 뒷바라지를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이렇게 테니스 대디들은 엄청난 헌신으로 자식을 스타로 키웠지만 반대로 친자식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악부(惡父)도 많다. 여기 욕설에 폭행은 물론 감옥살이까지 한 비정한 아버지들이 있다.
스테파노 캐프리아티
1990년대 초반 테니스 천재로 주목 받았던 제니퍼 캐프리아티(47·미국). 13살에 프로 무대에 데뷔한 캐프리아티는 세계 랭킹도 단박에 8위까지 끌어 올렸다. 16세 때 참가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당시 여자 테니스를 평정했던 슈테피 그라프(54·독일)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라프,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67·미국)를 넘어 차세대 여왕 자리를 예약한 듯했다.
하지만 빠르게 오른 최정상에서 마주한 건 급경사였다. 캐프리아티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코트 밖에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물건을 훔치고 마약까지 손을 대더니 1994년에는 아예 라켓도 놓아버렸다. 어린 선수의 성공과 방황은 테니스계에도 충격이었다. 나이에 맞게 정신적, 신체적 성장할 수 있도록 투어 데뷔 연령 제한 규정까지 만들 정도였다. 동시에 캐프리아티의 아버지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했다. 스테파노 캐프리아티는 어린 딸을 혹독하게 훈련 시키기로 유명했다. 특히 딸을 물건 삼아 여러 계약까지 맺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불량배’라는 별명도 얻었다.
다행히 주변의 도움 덕에 캐프리아티는 테니스에 대한 열정을 되찾았다. 재기도 성공적이었다. 2001~2002년 사이 메이저 대회에서 3차례 우승하며 세계 1위에 오르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다만, 아버지의 그늘은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한 일화로 캐프리아티는 2002년 국가대항전인 페드컵 멤버로 발탁됐다. 당시 훈련 과정에서 스테파노는 딸을 따로 훈련 시키는 등 독자 활동을 벌여 선수들의 비난과 항의를 받았는데, 달라지지 않는 태도에 결국 캐프리아티가 선발명단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그 홍역을 앓은 딸을 조랑말마냥 훈련시키고 ATM 취급한다는 비판이 늘 따라다녔다.
마린코 루치치
1999년 윔블던 여자 단식 4강전. 슈테피 그라프는 당시 무명 선수와 접전을 벌인 끝에 힘겹게 결승에 진출했다. 여제를 위협했던 선수는 미르야나 루치치(41·크로아티아)였다. 루치치는 15살에 US오픈 3회전에 오르고 98년에는 마르티나 힝기스(43·스위스)와 짝을 맞춰 호주오픈 여자 복식 정상에도 올랐다. 캐프리아티와 행보가 판박이었다. 차세대 여왕, 천재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곧 은둔자가 됐다. 도통 투어에서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는데 원흉은 아버지 마린코 루치치의 폭력으로 드러났다.
알고 보니 루치치는 아버지를 피해 미국으로 도망친 상태였다. 논란이 확산하자 마린코 루치치는 성명을 냈다. 그는 “결코 무리하게 힘을 쓰지 않았다. 만약 제가 가끔 미르야나의 뺨을 때렸다면 그건 미르야나의 행동 때문이었고 저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며 이른바 완전체스러운 유체이탈 화법을 보여줬다. 충격을 받은 루치치는 선수 생활을 포기했다. 시간만이 약이었다. 루치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한 2010년쯤 돼서야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거의 10년 만에 선수로도 복귀했다. 클라스도 영원했다. 루치치는 2017년 호주오픈 단식 4강에 오르고 투어 우승까지 차지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존 토믹
버나드 토믹(31·호주)도 유망주로 꼽혔지만 아버지 탓에 만개하지 못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의 아버지 존 토믹은 평소 극성스럽고 아들을 때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존 토믹이 아들의 연습 파트너였던 토마스 드루에를 폭행했기 때문. 때린 이유는 황당하게도 우유였다.
대회 참가를 위해 공항으로 가던 길, 존 토믹은 드루에에게 우유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심부름꾼 취급을 받아 불쾌했던 드루에는 거절했다. 열 받은 존 토믹은 비행기를 타고 내려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화를 삭히지 못했다. 결국 드루에를 따로 불렀고 얼굴에 침은 뱉은 뒤 박치기까지 시전했다. 이 사건으로 드루에는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결국 존 토믹은 폭행 혐의로 기소됐고 대회 참가를 금지당하며 아들을 따라 다닐 수도 없게 됐다. 사실 드루에는 버나드 토믹에겐 은인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동안 존 토믹이 아들과 딸을 때린다고 수차례 언론에 증언한 사람이 드루에였기 때문. 우유는 변명일 뿐 실은 존 토믹 입장에선 드루에가 눈엣가시이지 않았을까.
다미르 도키치
1999년 윔블던 여자 단식은 여러 모로 화제였다. ‘여제’ 그라프와 ‘무명’ 루치치의 4강전도 있었지만, 그보다 앞서 당시 1위였던 힝기스가 또 다른 무명 선수에게 일격을 당하며 첫판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옐레나 도키치(40·호주). 승리를 확정 지은 뒤 악수하기 위해 힝기스와 마주 선 도키치가 ‘고맙다’고 말하는 당찬 모습이 화제가 됐다. 사실 승리 비법은 따로 있었다. 도키치는 힝기스의 연습 파트너였고, 힝기스와 연습하며 그녀의 경기 스타일을 파악했던 것이다. 도키치는 그해 윔블던에서 8강까지 오르며 힝기스를 꺾은 게 마냥 우연이 아님을 보여줬다. 참고로 캐프리아티도 힝기스의 연습 파트너였는데 특히 메이저 우승 3번 중 2번은 힝기스를 꺾고 해냈다.
하지만 그녀도 아버지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레슬러 출신인 다미르 도키치는 딸이 지면 욕을 하고 주먹질을 해댔다. 그 정도가 상상 초월이었다. 벨트를 채찍 삼아 때려 딸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 일도 있었다. 이 탓에 옐레나는 경기에서 지면 아버지의 폭력이 두려워 숙소로 돌아가지 못하고 경기장에서 잠이 들곤 했다. 다미르의 폭력적인 행동은 안과 밖을 가리지 않았다. 기자랑 언쟁이 붙자 카메라를 부수는가 하면 연어 가격이 왜 이리 비싸냐고 진상 짓을 하다 US오픈 대회장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만약 내 딸이 레즈비언이라면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아 동성애자 선수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결국 철창 신세까지 졌다. 다미르는 호주 언론이 무리한 인터뷰를 해서 딸이 혹사 당했다며 세르비아 호주 대사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실제로 집 안에서 불법 무기까지 발견되자 기소됐고 결국 수감됐다. 아버지 때문에 한 때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다던 도키치. 다행히 잘 극복하고 현재 호주오픈 공식 리포터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짐 피에르스
통산 메이저 2회 우승자 마리 피에르스(49·프랑스)도 아버지의 학대를 피하지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 짐 피에르스는 경기 중 딸을 향해 응원 혹은 명령한답시고 ‘저 X을 죽여버려’라고 발언해 경기장 출입금지를 당했다. 발언 내용도 문제지만 피에르스의 나이를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당시 피에르스의 나이가 12세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딸이 경기에서 지면 무차별적인 폭행을 휘둘렀다. 딸이 하루에 서브 700개를 제대로 넣어야 재우는 등 가학적인 학대도 저질렀다. 보다 못한 마리 피에르스의 어머니가 나서서 이혼을 요구하고 법원에 접근 금지 명령까지 신청했다. 피에르스 모녀는 한동안 경호원을 고용하고 호텔에 묵을 때는 가명을 써야 했다.
짐 피에르스는 범죄 경력도 화려하다. 사기, 강도, 수표 위조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쯤 되면 다미르와 배 다른 형제가 아닌지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나서야 안정을 찾은 피에르스는 메이저 우승도 2차례 하고 세계 3위까지 올랐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지만 피에르스 아니었다. 악부 밑에 컸지만 효녀였다. 피에르스는 시간이 흘러 아버지를 용서했다. 과거를 싹 잊고 암에 걸린 아버지를 병간호까지 해준 걸로 알려져 감동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