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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러·나달·조코비치를 한 대회에서 모두 이긴 선수가 있다?

[디스이즈테니스] 지난 2022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ATP1000 마드리드 마스터스. 이 대회에서 카를로스 알카라스(20·스페인)는 진귀한 기록을 썼다. 바로 라파엘 나달(37·스페인)과 노박 조코비치(36·세르비아)를 각각 8강과 4강에서 연달아 꺾은 것. 클레이 코트 대회에서 나달과 조코비치를 연달아 이긴 최초의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결승에서 당시 3위 알렉산더 즈베레프(26·독일)까지 제압하며 진기록을 우승 트로피로 자축했다.

2022 마드리드오픈에서 나달과 조코비치를 꺾고 우승했던 알카라스
2022 ATP1000 마드리드오픈에서 우승한 카를로스 알카라스. 나달과 조코비치, 즈베레프를 제압했다

로저 페더러(43·스위스)와 나달, 조코비치의 상징성이 이렇다. 흔히 남자 테니스 역대급 3대장으로 불리는 세 선수. 기량, 경력, 기록 등 모든 부문에서 역사상 최고 선수들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만큼 선수 생활 내내 이들을 모두 이겨본 선수는 드물다.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이 세 선수를 그것도 한 대회에서 모두 이긴 12대쯤 덕을 쌓은 듯한 선수가 있다. 누굴까.

세계 3위까지 올랐던 다비드 날반디안은 현역 시절 윔블던 준우승도 차지했다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다비드 날반디안

날반디안, 페더러·나달·조코비치를 꺾다

역사를 쓴 선수는 전 세계 3위 다비드 날반디안(42·아르헨티나)이다. 기념비적인 사건은 공교롭게도 알카라스와 똑같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벌어졌다. 당시 시즌 내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20위 권에 머물렀던 날반디안. US오픈도 죽 쑤고 하반기 유럽 실내코트 대회 중 하나였던 마드리드 마스터스에 참가했다. 현재 마드리드 마스터스는 클레이 코트에서 열리지만 당시엔 실내 하드코트 대회였고 10월에 열렸다. 날반디안은 1회전과 2회전을 모두 풀세트 접전 끝에 힘겹게 통과했다. 16강에서 당시 50위권이었던 전 세계 3위 후안 마틴 델 포트로(35·아르헨티나)를 제압하며 그해 ATP1000 대회 최고 성적을 경신했다.

그렇게 8강에서 처음 만난 빅3는 당시 세계 2위 나달이었다. 두 선수의 첫 맞대결이었지만 날반디안의 당시 랭킹은 25위, 대회 참가 전 시즌 전적은 19승 17패에 불과했다. 여러 모로 객관적 전력에서 나달이 앞섰다. 당연히 나달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하지만 막상 길고 짧은 걸 대보니 긴쪽은 날반디안이었다. 그야말로 인생 경기를 펼친 날반디안은 나달에게 단 3게임만 내주며 1시간여 만에 4강행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결승행 티켓을 놓고 맞붙은 건 당시 세계 3위 조코비치였다. 조코비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날반디안은 힘겹게 한 게임을 브레이크해내며 1세트를 가져왔고 2세트도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난타전 끝에 조코비치를 세트 스코어 2-0으로 제압했다. 결승 상대는 페더러였다. 당시 페더러는 단어 그대로 무적이었다. 그해 메이저 대회를 3차례 석권하며 투어를 휩쓸었다. 제 아무리 신 내린 날반디안이라도 페더러를 꺾기는 힘들어 보였다.

예상대로 1세트는 페더러의 6-1 완승으로 끝났다. 드라마는 4강에서 끝나나 했지만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2세트 들어 흐름이 바뀌었다. 전열을 가다듬은 날반디안이 약점으로 꼽힌 첫 서브 성공률과 승률을 높였고, 보고도 안 믿기는 백핸드 위너도 잇따라 꽂았다. 상승세와 기회를 놓치지 않은 날반디안은 2, 3세트 모두 6-3으로 가져오며 역사를 완성했다. 우승 트로피와 함께 ‘자이언트 킬러’라는 새 별명도 얻었다.

날반디안은 페더러를 꺾고 2007 마드리드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2007년 마드리드 마스터스 결승에서 페더러(우)를 꺾은 날반디안

물론 보리스 베커(56·독일)와 조코비치도 한 대회에서 세계 1, 2, 3위를 모두 꺾은 적이 있다. 하지만 한 대회에서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를 모두 꺾은 선수는 그때도 지금도 날반디안이 유일하다. 다소 억세게 운 좋은 선수의 일회성 우승도 아니었다. 날반디안은 3명을 꺾은 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불과 2주 뒤에 다시 입증했다. 파리 마스터스에서도 페더러와 나달을 각각 16강, 결승에서 꺾으며 시즌 2승을 신고한 것이다. ‘각성하면 무서운 선수’ ‘백핸드만 제 컨디션이면 무적인 선수’ 등등 다양한 별명이 따라붙었다.

날반디안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세계 최고 선수인 페더러와 결승에서 맞붙은 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우승까지 해서 참 행복하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알고 보면 페더러 천적

사실 날반디안이 최전성기의 페더러를 연거푸 꺾은 게 마냥 놀라운 일은 아니다. 5살 때 처음 라켓을 잡은 날반디안은 부상에 시달리기 전까지 페더러에 우위를 보인 선수 중 한 명이었다. 1998년 US오픈 주니어 단식 결승에서 페더러를 이겼고 이듬해 1999년 윔블던 복식 결승에서도 페데러를 제압하고 우승했다.

초반 성인 무대에서도 우위는 이어졌다. 2003년 US오픈까지 페더러와 5번 맞대결을 펼쳐 모두 승리했다. 2005년 연말 왕중왕전에서도 당시 1위 페더러를 꺾고 우승하며 ‘페더러 천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후에도 최전성기 페더러를 상대로 6승 8패라는 밀리지 않는 상대전적을 보유한 드문 선수였다. 4대 메이저 대회 모두 4강 이상 올랐고 2002년 윔블던에선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날반디안은 테니스 선수를 은퇴한 뒤 레이싱 선수로 활동했다
은퇴한 뒤 레이싱 선수로 활동한 날반디안

하지만 늘 부상 악령에 시달렸고 본인의 게으름과 약한 정신력 탓에 더 발전이 없다는 평을 들었다. 뭐가 됐든 날반디안은 미친 폼으로 역사적인 기록을 쓰고 2013년에 공식 은퇴했다.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며 레이싱 선수로 제2의 인생을 산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다. 지난해엔 전 여자친구 집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기소됐다는 불미스러운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제는 페더러가 은퇴한 상황. 빅3를 뛰어 넘는 선수, 그것도 3명이 나오지 않는 이상 한 대회에서 역대급 선수 3명을 모두 꺾은 선수는 날반디안이 최초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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