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A 파이널스, 3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
사우디아라비아, 2024~2026년 개최
총상금 70% 넘게 인상
[디스이즈테니스=김한대 에디터] 여자 테니스 시즌 최종전이자 왕중왕전인 ‘WTA 파이널스’가 3년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다.
WTA(여자테니스협회)는 5일(한국시각) “올해부터 2026년까지 WTA 파이널스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한다. 올해 대회는 11월 2일부터 9일까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다”고 발표했다.
WTA는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나라에 대한 입찰과 선수 평가 등 종합 평가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리야드를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평가 항목으로는 선수와 팬들에게 세계적인 수준의 경기를 제공할 능력, 상금 인상 여부, WTA 발전을 위한 헌신 등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올해 대회 총상금 규모는 1,525만 달러(약 206억 원)로 지난해와 비교해 70% 넘게 인상됐다. 2025년과 2026년에는 총상금이 1,550만 달러까지 오른다.
사우디는 테니스 영향력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남자부의 21세 이하 왕중왕 전인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를 유치해 지난해부터 제다에서 개최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 대회 개최권을 2027년까지 가지고 있다.
애초 이탈리아에서 열렸던 이 대회는 개최지를 사우디로 옮기면서 총상금도 140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로 뛰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는 4대 메이저 다음으로 규모가 큰 ATP1000 대회 유치도 나선 상태다.
매년 1월에 열리는 시즌 첫 메이저 대회 호주오픈 전에 개막하는 ATP1000 대회 유치를 희망하는 와중에 여자부 최종전까지 유치하며 남녀 불문 테니스계에 손을 뻗치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반발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부터 WTA 파이널스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여자 테니스 전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미국)와 크리스 에버트(미국)는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인권 상황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성소수자를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나라라서 WTA 파이널스를 개최하기엔 적당하지 않은 곳이라는 게 요지였다.
주미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가 나브라틸로바와 에버트의 주장에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신경전으로 번지기도 했다.
WTA가 사우디아라비아 개최를 최종 발표하자 두 테니스 레전드는 다시 비판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나브라틸로바와 에버트가 “여자 테니스와 WTA 자체의 정신과 목적에 완전히 양립할 수 없다”고 다시금 강조한 것.
이에 WTA 주요 관계자들은 “분명히 그들은 WTA 전설들이고 매우 존경 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우려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안다”면서도 “궁극적으로 우리는 우리의 스포츠를 위해, 여자 테니스를 위해, 우리 선수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 팬들을 위해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느낀다. 우리는 이것이 스포츠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흥미로운 기회이자 중요한 단계라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대회를 뛰는 당사자인 현역 선수들의 생각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모양새다.
이가 시비옹테크(1위·폴란드), 코코 고프(3위·미국) 등 주요 선수들은 개최지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시비옹테크는 지난달 한 인터뷰에서 “유럽에서 WTA 파이널스를 개최하길 바라는 선수들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사실 개최지는 우리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사면초가에 빠진 WTA
현역 선수들이 온건한 입장을 보이는 건 현재 WTA의 열악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애초 WTA 파이널스는 중국 선전이 2019년부터 10년 동안 개최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슈로 2020년엔 열리지 못했고 2021년 대회는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렸다.
2022년부터는 아예 중국 개최가 취소됐다.
복식 세계 1위에도 올랐던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중국)가 2021년 장 가오리 전 부총리로부터 성폭행 당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폭로글은 몇 시간 만에 사라지고 펑솨이의 행방도 묘연해지면서 WTA는 의혹과 펑솨이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중국과 홍콩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대회를 모두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자연스레 WTA 파이널스 개최도 취소됐다. 이에 따라 2022년 대회는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렸다.
하지만 재정 상황이 나빠진 WTA는 지난해 4월 입장을 바꿔 중국 투어 대회를 9월부터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WTA 파이널스는 대회 개최 두 달 전인 9월까지도 정확한 개최지나 요강을 발표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파이널스는 US오픈이 끝나고 시즌이 막바지로 향하던 9월이 돼서야 개최지가 멕시코 칸쿤으로 최종 결정됐다.
당시 준비 미흡으로 개막 직전까지 코트가 완성되지 않았고, 대회 내내 코트 컨디션도 열악했다. 홍보 시간도 부족해 선수들은 텅텅 빈 경기장에서 최종전을 치러야 했다.
아리나 사발렌카(2위·벨라루스)가 ‘다음 경기에서는 관중석이 꽉 찬 모습을 보고 싶다’고 공개적으로도 말했으나 대회는 끝날 때까지 여러 잡음에 시달렸다.
급기야 엘리나 스비톨리나(18위·우크라이나)는 “왜 WTA가 칸쿤에서 최종전을 개최한 건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 8명이 경기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고 우리 스포츠에 끔찍한 이미지를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마르케타 본드루소바(8위·체코)도 “경기장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주최 측이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동조했다.
사면초가에 빠졌던 WTA 입장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유치가 고육지책인 셈이다.
여러 논란고 잡음에도 일단 오일 머니로 겨우 한숨 돌린 WTA가 올해 파이널스는 제대로 치뤄낼지 이목이 집중된다.